출처:스포팅닷컴
몽골의 전쟁기술은, 온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기마궁수들이 용맹을 뽐낸 황금시대의 정점이었다. 칭기스 칸이 1206년에 부족을 통일한 이후 몽골 유목민 집단은 모든 방향으로 뻗어갔으며 그의 아들과 손자들은 각기 페르시아, 남러시아, 중앙아시아, 중국에 걸쳐 4개의 한국(汗國)을 세우고 지배했다.
몽골이, 칭기즈 칸(Ching Khan)과 같은 군장과 기마궁수(驥馬弓手)을 앞세워 그들의 영토를 넓혀갔다면 800여년이 지난 지금, 'Just Do It'이란 슬로건을 앞세워 스포츠제국을 만들고 있는 新칭기즈 칸이 있었으니, 바로 나이키다. 1968년 미국 오래곤에는 필립 나이트와 윌리엄 보어먼이란 보따리행상이 있었다.
오레곤 대학의 육상선수와 육상코치 출신이었던 이들은 '오니쓰카 타이거'란 당시 일본 고급운동화를 들고 대학 운동장을 전전하며 장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에 자신들이 보따리행상급이란 사실이 밝혀지면 수입선이 바뀔 것을 염려, 페르시아에 승리했다는 승전보를 전하기위해 42.195Km를 달린 그리스 병사가 기도를 올렸다는 승리의 여신인, '니케'를 회사 이름으로 택했다.'나이키'는 '니케'의 영어식 발음.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나이키마크는, 당시 주위의 미술대학원생에게 단돈 35달러(파이낸셜 월드지가 평가한 나이키의 브랜드 가치는 약 72억달러)를 주고 V자를 부드럽게 휜 마크(스워시(swoosh, '휙'이란 뜻을 가진 이 단어는 나이키사의 홈페이지(http://www.nike.com) 메인화면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를 만들어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갔다. 이 때가 1972년.
올림픽 마라톤 예선전 현장을 찾아가 나이키를 신고 뛰어 줄 것을 부탁, 이들 중 몇몇이 상위권에 들자 '7위까지 중 4명이 나이키 신발을 신었다'란 광고문구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다. 70년대 몰아친 조깅 바람은 나이키사의 고속전진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80년대 조깅열풍이 식자, 나이키사의 판매와 이윤이 각각 18%, 14%나 떨어졌다. 당시 미국의 캐주얼 신발시장에서 나이키는 리복에 뒤져있었고-리복의 여성 에어로빅 슈즈가 빅히트되자, 나이키는 새로운 돌파구를 뚫어야 했다.
Just Do It. 90년대 들어 나이키는 여성을 겨냥, 운동을 해야하는 육체-정신적 동기를 부각시키기 위해 'Just Do It'이란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후 나이키의 전략은 스포츠의 상업화, 마이클 조던이나 찰스 바클리, 스코티 피펜, 타이거 우즈, 호나우도, 안드레이 아가시 등 스포츠 스타를 자사모델로 기용해 나이키 이미지 만들기에 전력을 다했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조던을 비롯한 나이키의 후원을 받는 농구스타들이 아디다스 마크가 찍힌 유니폼을 입고서 시상식에 오르는 것을 거부, 성조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시상대에 오르기도 했다. 94년 이후 매출과 순이익이 71%, 80%
늘은 나이키사. 신발가게는 망해도 나이키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호황을 거듭했던 나이키에 위기가 닥쳤다.
아시아 국가들의 계속되는 경제침체, 소비자 취향 변화라는 거센 위기의 파도에 휩쓸린 것. 미국에서만 450명, 총 1600명의 직원을 감원, 호황이 계속되고 있는 미국경제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나이키사의 이같은 조치는 70% 수입감소, 14% 이상 하락한 판매가 주요요인. 고급 브랜드보다는 갈색 허쉬파피나 민자 흰색 단화가 유행, 광고 전략의 대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빅스포츠 스타들을 중심으로 펼쳐왔던 그간의 광고전략을 버리고 무명의 선수, 비인기 종목 선수를 자사 모델을 새로운 슬로건인 'I Can'과 연계시켜 'Just Do It'이 내포한 상업성을 희석시키고 있다.
미국 민간 비영리 인권기구 글로벌 익스체인지는, 미국 신발업체인 나이키와 리복의 중국하청업자들이 13세 밖에 안된 아이들까지 고용, 시간당 10센트 이하의 저임에 하루 17시간씩 일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밝혀 언론의 주목을 받고있는데 그동안 세계 제일의 운동화제조업체인 나이키는 국외에서 착취 공장들을 운영하고 있다,는 인권단체들의 비난을 받아 왔다. 이에 대해 나이키는 보고서가 엉터리라고 반박하고 있으나 외면하기 힘든 실정.
안밖으로 어려움에 처한 나이키가 택한 모험은 'I Can'. 아마추어 정신,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담은 광고를 제작, 방영하고 있다. 지나치게 상업, 프로화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비인기 종목, 무명의 선수를 등장시킨 광고를 제작,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다.